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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Bok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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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3. 15:32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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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흡은 어려서 입교하였는데 1801년에 이복형인 최창현이 순교한 후로는 냉담한 생활을 하다가 30세경 결혼한 뒤 아내 손소벽과 함께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821년 아내와 함께 대세를 받고, 이때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때 전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형문 을 받고 12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의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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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3. 15:29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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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 베드로는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나 독실한 신자 가정에서 성장하였는데 1836년 모방 신부의 복사로 여러 해 동안 신부를 보필하며 전교에 힘썼다.

1839년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후로는 목수일을 하여 묵주 만드는 일과 교회서적 간행을 도왔는데, 베르뇌 주교 입국 후에는 교회서적 출판의 책임자가 되어 교회서적 출판에 크게 공헌하였다.

1866 년 주교가 체포되면서 적발된 많은 교회서적들 때문에 체포되어 3월 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순교자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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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3. 15:28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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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한아기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리를 배웠지만 성장하면서 세속 일에 마음이 쏠려 모친의 권면을 무시하고, 외교인과 결혼하였지만 김업이 막달레나를 만나 회두권고를 받아 다시 교리를 배우면서 믿음의 눈을 뜨게 되었다.

30세가 되던 해, 남편과 세 자녀를 모두 잃고 친정으로 돌아와 더욱 깊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1836년 10 월, 김업이, 김아기 등과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었고 3년간의 옥살이 후 1839년 서소문 밖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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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3. 15:27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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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이는 성녀 권진이의 어머니로서 본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혼기에 이르러 권진사라는 외교인 양반의 후처로 들어가 딸 권진이를 두었다.

남편은 중년에 천주교에 뜻을 두었는데 임종 대세를 받고 죽으면서 천주교를 믿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남편의 간절한 부탁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위해 집을 떠나 교우들의 집에 몸붙여 살아가다가 1839년 7월 17 일 딸과 함께 체포되었다.

고문과 형벌을 꿋꿋이 참아내어 다른 교우들 6명과 함께 12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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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3. 15:26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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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양반집안에서 태어난 한이형은 14세 때 입교하였고 21세 때 교우처녀와 결혼한 뒤 경기도 양지의 은이 마을에 이사해 살았다.

원래 정직하고 헌신적인 성격을 가진 그는 뛰어난 덕행과 모범적인 신앙으로 앵베르 주교의 입국 후 회장으로 임명되어 자선사업과 전교에 온 힘을 쏟았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고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체포되었는데 체포된 그 자리에서 심한 매를 맞았는데도 압송될 때에는 백리가 넘는 길을 혼자서 걸어갔다.

포청에서도 심한 매와 형벌을 받아 참다가 9월 20일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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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