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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30. 12:25 구약성경

구약성경에 관하여

유다인의 경전 : 하느님의 아브라함, 모세와 맺으신 계약 이야기, 그리고 아브라함 후손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겪 은 그들의 역사가 실려있다. 유다인의 경전은 10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쓰여지고 모아졌다.

기원전 10세기경
수세기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온 이스라엘의 부족전승들이 처음 글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기록된 낱권들 가운데 몇 몇은 거룩한 문서로 받아 들여졌다. 특정한 사람들의 말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다.

기원전 5-4세기경
율법서(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이끌어 주는 규범들), 예언서(이스라엘이 하느님께로 돌아 오도록 촉구하는 글들), 그리고 성문서의 대부분(시,격언,역사 등)이 경전화되었다. 논란이 된 책도 몇 권 있었다. 성경으로서의 권위가 의문시된 책은 전도서, 에스델서, 아가서 등이다.

기원전 3-1세기경
해외거주 유다인들을 위해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70인역이라 불 리는 번역본에는 팔레스티나와 해외거주 유다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구약성경 낱권들이 모아져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구약성경은 바로 이 성경에서 틀이 잡혔다. 예수님이 즐겨 사용하시고 신약성경에서 인용한구약성경은 대부분 70인역이다.

기원후 90-100년경
유다의 얌니아에서 일단의 유다 랍비(바리사이파)들이 모여 정경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기원전 400년 이전에 쓰여진 것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
내용이 윤리적으로 타당한 것
하지만 그에 대한 논쟁은 유다인들 사이에서 계속되다가 기원 후 2세기 이후에야 39권으로 정경이 확정되었다. 70인역 성경에는 39권 이외에도 여러 권이 더 실려 있었는데,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는 그 중 7권을 제 2경전이라 하여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관하여

그리스도인의 성경 : 그리스도교 신앙의 바탕이 되는 내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인류에게 주신 그분의 말씀, 사도들의 전교활동, 그리스도교 개종자들을 격려하는 사도들의 편지들이 모아져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그리스도의 성경)을 그들의 성경으로 사용했다. 얼마 후에 가서야 그들 자신의 성경을 집필해 사용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완성한다. 교회 조직에 관한 지침과 윤리적인 가르침, 그리고 신앙을 명확하게 하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신약성경은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쓰여졌다. 그리스도와 구분의 가르침에 대해 묻는 그리스도교 개종 자들에게 답변하기 위해서 또 이단(거짓 가르침)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이다.
50년대 부터 바오로 사도의 편지는 공공 예배시 회중 앞에서 강론으로 읽혀지곤 했다.
95년경 그의 편지들이 수집되어 사도행전과 함께 공공예배에서 정규적으로 읽혀졌다. 다른 사도들(야고보,베드로,요한,유다 등)에 의해 쓰여진 편지들 역시 공공예배 때 읽혀졌다.
100-105년경 이 편지들은 바오로의 편지들과 함께 묶여졌다.
70-100년경 그리스도에 관해 입으로 전해지던 전승들이 복음서로 기록되었다. 이 시기에 근본적으로 똑 같은 사건들이 네 사람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이 복음서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150년경 복음서들이 한데 모아지고 정경이 되었다.
180년경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글로서, 또 신앙의 근거로서 복음서와 서간들이 한데 묶여졌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정경이 되었을까?

구약성경 :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 구약성경을 사용했다.
ㆍ2세기경 : 사도 시대를 거치면서 초대교회는 구약성경도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의 공식전례 때에도 계속 사용했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과 관련되어 중요하게 여겨졌을 뿐 아니라 기도생활을 도와주고 삶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ㆍ3세기경 : 교부들은 구약성경에서 정경과 그 외의 책을 구분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둘 다 계속 사용했다.
ㆍ4세기경 : 지역 공의회(393년 힙포공의회 등)에서는 나름대로 구약 정경의 목록을 46권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로마 가톨릭
피렌체공의회(1438-1445)에서 성경 73권(구약46, 신약27)이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그 뒤 트리엔트 공의회(1546)에서 불가라역 성경의 권위를 확인하면서 피렌체공의회의 정경목록을 다시 확인하였다.

프로테스탄트
웨스터민스터 회의(1643)에서 구약성경 중 7권을 제외시켜 '외경'으로 구분했다.

동방교회
예루살렘 회의(1672)에서 제2경전 중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만을 정경에 포함 시켰다.

정경은 하느님으로부터 참된 영감을 받아 쓰여져서 교회로부터 거룩하다고 인정된 책들을 가리킨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이 곧 정경이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신약성경 : 교회는 이단(거짓 가르침)에 대항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성경의 목록을 만들었다.
ㆍ100년경 : 사도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갖가지 복음서를 써서 널리 보급했다.
ㆍ140년경 : 유력한 그리스도교 지도자였으나 이단 사상을 지님 마르치온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무관하다고 하여 구약성경을 제외시킨 채 마음대로 신약정경의 목록을 만들어 출판했다. 이로 인해 교회에서는 모두가 공인할 수 있는 정경 목록이 필요하게 되었다.
ㆍ180년경 : 복음서, 바오로 서간,사도행전,유다서,묵시록 등을 정경으로 인정한 목록이 나왔다. 이 목록을 18세기에 무라토리라는 사람이 발견하였다고 하여 '무라토리 정경목록' 이라고 부르고 있다.
ㆍ200년경 : 마리아의 복음, 요한의 비밀서 등 이단 교리인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책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이에 대응하여 다음과 같은 책들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 사도들이나 그와 동등한 권위가 있는 이들에 의해 쓰여진 것
* 공동체의 공식 예배에서 사용되는 것
ㆍ4세기경 : 217년경 에집트 교회에서는 신약정경을 27권으로 결정하였고, 4세기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아나타시오'가 이를 확정시켜 모든 논쟁을 종식시켰다. 라틴교회와 동방교회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정경의 목록을 확정 지었다.


성경의 번역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한 성경은 그리스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쓰는 곳에서만 사용되었다. 그후 그리스도교 가 여러 나라로 전파되면서 성경의 번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라틴의 불가타역(최초의 공식 번역성경) : 382-418년경 교부학자인 예로니모는 교황 다마소 1세의 부탁을 받아 성경을 라틴어로 옮겼다. 그는 시편을 제외한 구약성경을 히브리어 성경에서, 제2경전은 고대 라틴어역에서, 신약성경은 이미 번역되어있던 고대 라틴어 역본과 그리스어 사본에서 옮겼다. 이 성경은 1000년이 넘게 성경 번역의 기준이 되어왔다.(불가라란 말은 널리 알리다, 퍼뜨리다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우리말 성경과 세계 각국어로 쓰여진 성경들 가운데서 자신에게 맞는 성경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해마다 새롭게 출판하는 성경들은 보다 쉽게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번역된 성경들

ㆍ새 번역 신약성경 : 개신교에서 1967년에 출판하였다.
ㆍ공동번역성서 : 1977년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번역하여 출판한 성경전서.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ㆍ구약성서 : 원문에 충실한 번역과 해설을 덧붙인 성경으써 신약성서는 1974년부터 낱권으로 출판되었고, 구약성서는 1977년에 11권이 나온 후 중단되었다가 1989년부터 계속 출판되었다.
ㆍ성경 : 2005년 성경의 본문을 충실하게 옮긴 가톨릭 공용 성경 발행.

이렇게 성경은 아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한데 모아지고 묶여졌다. 많은 어려움과 심사숙고 끝에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삶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보다 나은 삶을 배우게 되며 성경의 노래, 시, 역사, 이야기들을 나누며 풍요롭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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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0. 30. 12:25 구약성경

하느님께서는 우주의 창조물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셨지만 인간은 교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고 가까이 찾아오셔서 용서와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
이와 같은 인간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모세의 중재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새로운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신약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약의 말씀이며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는 말씀으로서 기쁜 소식이며 영감된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구체적으로 연감된 하느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 형태를 취하고 있다.

1단계 : 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 이스라엘의 생활 안에서(구약성경)
2단계 : 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 그리스도의 생애 안에서(4복음서)
3단계 : 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서(사도행전,신약 서간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준비한 바를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시킨다. 즉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약속과 성취의 관계이다. '...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의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 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루카 24,44)는 말씀은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미리 보여 준 것임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셨다.(요한 10,34-35).

성경은 구원을 주는 능력의 말씀이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능력 입니다(로마 1,16)

성경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는 성경은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해 준다고 요한 사가는 말한다. '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요한 사가는 성경의 목적을 생명이라고 했지만 사도 바오로는 구원이라고 말한다(로마 10, 9-10; 1,16). 그러나 결국 같은 의미이다. 생명과 구원을 주는 성경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며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우리를 회개의 생활로 인도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게 하며 우리를 하느님의 생명과 구원에 참여하게 한다.

성경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다.
성경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고 오시는 구원자요 해방자이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기 때문에 기쁜 소식이다(이사 52,7참조).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주어지는 고뇌, 갈등, 불안, 욕심, 교만 등에서 해방될 때 참 생명이 무엇인가를 체험하게 되며 이 참 생명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이때에 우리는 구원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의 구원은 우리의 현 실존적인 것으로서 하느님께로의 끊임없는 개방과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존재 내지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영감된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우선 영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밝힐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영감은 성경적 영감을 말한다. 성경적 영감이란 어떤 인간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인간의 말로 옮길 수 있도록 부여되는 특수한 하느님의 도우심을 의미한다.
교회는 신ㆍ구약성경의 영감을 인정해 왔고 하느님의 특별한 인도를 받아 기록된 것으로 주장해 왔다. 교회가 인정하게 된 성경이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은 구세사에 비추어 봄으로써 더욱 확신을 갖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으로부터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말씀과 행적(업적 및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해 주셨고 당신의 현존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성경이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은 구약성경 안에 나타난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해 봄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에집트에서부터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탈출기-여호수아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사건들 즉 에집트에서의 해방(구원),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 체결, 광야에서의 인도, 요르단 강을 건너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건들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손길을 보았고 하느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으며 하느님의 역사 개입을 믿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매 단계마다 당신의 말씀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지도자들과 예언자 들을 파견했다. 맨 처음 성조들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그 후에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다음에는 판관들, 왕들, 예업자들을 통해서 말씀 해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역사(행적)와 지도자나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고 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했다.

이상에서 말한 행적과 말씀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집 정리되어 기록되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는 구전으로 전승될 때에도 직접 활동하셨지만 기록되는 단계에서도 직접 영감으로 활동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기록된 말씀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졌고 하느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믿었다.

영감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 인간, 그리고 이다.
하느님
하느님의 영은 사람을 움직여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동하고 발언하게 하실 뿐 아니라 말씀과 행적을 전수하는 과정에서도 활동하시며 그 시대의 사고방식과 표현 방법을 사용하시어 기록하도록 성경 저자들의 의지를 움직인다.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반포된 성경 연구에 관한 회칙 '하느님의 섭리'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하느님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들을 감동시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신 만큼 - 그들에게 아주 뚜렷하게 현존하신 만큼- 그분이 명하신 오직 그것들만이 우선 그들에게 올바로 이해되고 다음에 충실하게 기록되고 마침내는 적절한 낱말과 그르칠 수 없는 진리로 표현되었다.'
하느님의 충동을 받은 성경 저자들이 기록한 내용은 전승의 유산을 받은 계시의 내용과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 저자는 하느님이시다.

인간
하느님께서는 인간 저자를 통해서 책을 쓰신다. 인간은 도구의 역할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볼펜으로 편지를 쓴다고 하자. 그가 빨간색 볼펜으로 글씨를 쓴다면 빨간 글씨가 쓰여질 것이고 검은 볼펜으로 쓴다면 검은 글씨가 쓰여질 것이다. 즉 글씨의 색깔은 쓰는 사람에 의하여 제한을 받거나 종속된다. 인간을 통해서 나오는 하느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이다. 저자의 어조,사상, 그의 인물됨, 그리고 그가 사는 시대의 배경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그래서 저자를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매우 다양한 표현으로 기술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성경의 원 저자가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성경의 원저자는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이시고 인간은 이차적인 저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의 원 저자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하느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제시하여 주며 성경의 말씀은 반드시 뜻을 성취하고야 말기 때문에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이사 40,8; 55,11; 에제 12,25)
이처럼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시대, 배경, 어법, 문체, 사상을 통해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책이니 그르칠 수 없고 진실하다(무류성).

성경의 명칭
페니키아의 항구 도시 비블로스는 파피루스의 수출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파피루스에 성경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희랍계 유다인들은 그 항구의 이름을 따서 구약성경을 '비블로스' 또는 '비블리아'라고 불렀다. 5세기 이후에는 희랍교회가 성경을 '타비블리아'라고 불렀고 9세기에는 서방 신학자들도 '비블리아'라고 불렀다. 12세기에는 '비블리아'가 성경의 고유 명칭이 되었다

초대교회 때는 구약성경를 인용할 때 '사끄라 스끄립따(Sacra Scripta)'라고 했다. 그 뜻은 씌어진 거룩한 책이라는 뜻이다. 즉 글로 씌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글로 씌어지고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성경을 '떼스따멘뜸(Testamentum'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히브리어의 계약이라는 말인 '버리트(berit)의 번역이다. 이 명칭에 따르면 성경이란 계약의 말씀으로서 모세의 중개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책(구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새로운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책(신약)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구원의 계약을 '버리트'라 한다.

사도 바오로는 계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구약을 옛 계약이라고 했고(Ⅱ고린 3,14), 신약을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계약인 새계약(Ⅰ고린 11,25)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신약과 구약을 나누는 근거는 예레미아 31장 31절에 있다. 이 예언의 실현은 마태 26,28의 성체성사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도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마태 26, 2 8; 루카 22,20)

2세기 중엽에 와서는 신약과 구약이라는 말을 일반화시켜 사용하였다. 구약은 기원전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 사상을 중심으로 엮어진 구원 계약의 책이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구약을 새롭게 완성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전인류와 맺으신 새로운 계약의 책이다

성경의 언어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지만 일부분은 아라메아어로 쓰여졌다. 자음 22자로 된 히브리어는 기원전 18세기 셈족이 발명한 언어로서 페니키아인들을 통해 기원전 10세기 희랍인들에게 전해졌다가 로마인을 거쳐 유럽의 알파 벳의 기초가 되었다.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라메아어는 셈족 언어에 속한 것으로 시리아 유목민들의 언어였다. 히브리어는 원래 아라메아어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아라메아어와 유사하다. 아라메아어에는 동방 아라메아어와 서방 아라메아어가 있는데 예수님 시대에 쓰인 언어는 서방 아라메아어에 속한다.(예 : 마르 5,41 '탈리다쿰' 마르 7,34 '에파타')

기원전 3세기경(희랍시대) :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희랍어(코이네-속화된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이것을 70인역(셉뚜아진따)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의 제2경전과 신약성경은 코이네 희랍어로 쓰여졌다.

기원후 2세기 말경(로마시대) :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고대 라틴어 번역 중 가장 유명한 것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에 걸쳐 성 예로니모(348-420)에 의해 번역된 불가타 성경이다. 이 불가타 역본은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본은 모두 대본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도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 7~8세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교회가 불가타역본(통용본)을 사용하게 되었다.

신약성경의 언어
신약성경 27권을 기록한 언어는 '코이네 희랍어'이다. 이 코이네 희랍어는 기원전 330년경부터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가 전파된 그리이스, 알렉산드리아, 로마제국 안에서 쓰이던 일상용어였다. 이 코이네 희랍어는 신약성경 외에도,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할 때도 사용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고전 희랍어와 구별하여 성경 희랍어라고도 합니다. 이 성경 희랍어는 히브리어, 아라메아어 및 구약성경의 영향을 받았으며, 일상용어이기도 하여 독창적인 의미와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신약성경 27권은 모두 이 코이네 희랍어로 씌어졌는데 저자 친히 썼거나 혹은 구슬하여 쓰게 한 그 원본은 분실되고 수사본들만이 전해지고 있다. 원문에서 베껴 쓴 수사본들은 베낀 것을 몇 번이고 다시 베껴 쓴 것들과 희랍어로 된 것만으로도 5,000여종이 있다.

성경의 장과 절
오늘날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장절의 표시는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었다. 구약시대에는 회당에서 낭독하기 편리할 정도의 절 구분이 있었을 뿐이었다.

성경의 장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 후 226년 파리대학의 학장 '랑똥'에 의해서 였고, 절 구분은 랑똥과 동시대 사람인 도미니꼬회 신부 후고(+1263/4)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그후 1551년 파리의 인쇄업자 '엔띠엔느'가 리옹과 파리를 왕래하는 여행 중에 연구한 바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경의 장 절 표시는 1555년경 프랑스왕국의 인쇄담당자였던 '로베르트 스테파누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인쇄 담당자였으므로 성경을 편집하고 인쇄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장 절의 표시는 문맥이 끊어지는 점이 있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차차 수정되면서 오늘날에는 통일된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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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30. 12:22 구약성경
1.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된 거룩한 책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잊지 않고 자주 회상하여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고 어떤 난관 속에서도 강한 인내력을 발휘한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들을 잊지 않으셨지만, 인간들은 너무나 자주 하느님을 잊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갔다. 하느님을 잊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인간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때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이다.
성경에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 뜻을 배반한 인간의 역사, 그리고 회개하여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인간의 역사와, 항상 철부지 같은 인간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성경는 글자 그대로 '거룩한 경전'이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들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과 편지를 통해서 만나게 되고 또 전화를 통해서 직접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동시에 하느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펼쳐 보면 곧 알겠지만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먼저 방대한 분량에 입이 벌어지게 되고, 무슨 내용을 말씀하시려고 하는지 여간해서는 알아듣기 힘들다.
 
2. 구약과 신약의 형성배경, 목록, 사상
1) 구약과 신약의 형성배경
먼저 구약과 신약의 낱말 정의부터 하자. 구약이란 글자 그대로 옛 약속을 말한다. 그것은 신약, 즉 새로운 약속에 의해서 붙은 이름이다.
즉, 신약성경이 생기기 전에는 성경하면 구약만을 의미했다.
구약과 신약의 경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해서 나누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이 구약이며, 태어나면서부터가 바로 신약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타락한 인간들이,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기다리는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복음 선포와 죽음 그리고 부활, 승천 후 성령의 강림으로 설립된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사도들의 모습을 알려주면서, 끝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열망하는 내용으로 마치게 된다.
구약성경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보통 구약성경하면 천지창조,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 노아의 홍수, 모세와 십계명 등이 생각날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B.C 1,000년경 왕국을 형성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다윗 왕조이다.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해 다니면서 생활을 했다. 그러다 보니까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는 경우가 자주 생겼는데 군대도 없었고, 왕도 없었기 때문에 피해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왕을 세우고 이민족들의 침입에 대비하게 된다.
왕이 탄생하고 군대가 조직되면서 이스라엘은 이민족의 침입에 방어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세금을 내야 되었고 군대에 가야만 되었으며 권력의 횡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원래 자신들의 원초적인 역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출애굽을 상기하게 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은 너무나 무기력한 상태였지만 강한 에집트 군대를 무찌를 수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야훼 하느님의 역사적인 개입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과 자신들에 대한 역사를 회고해 보면서 구전(口傳)들을 모아 한 줄 한줄 적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이 글로 기록된 형성배경이 된다.
특히 이스라엘은 중동의 완충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위 민족들의 침입을 많이 받아 귀양도 여러차례 가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반성하게 되고,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야훼 하느님께 대한 불충의 결과였음을 고백하게 된다.
즉, 에집트, 중동의 여러 민족들, 동남 아시아, 발칸 반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탄원도 하고 원망도 하며 때로는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구약성경을 형성하게 한 배경이 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항상 강조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잊지 말아라! 하는 표현이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신명 6,4-9).

즉, 야훼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내용을 항상 기억하고 자손들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승천 후 예수님과 같이 살았던 동시대 사람들은 굳이 글로 적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직접 복음을 선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목격 증인들이 죽고 또 멀리까지 복음을 선포하는 데 여러가지 장애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들은 글로 남겨야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성경 저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를 기억하고 자료들을 수집해서 글로 남기게 되다. 물론 그 글 속에는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또한 사도들도 자신들이 복음을 선포한 교회를 전부 돌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쓰게 된다. 즉 각 지방교회의 신앙을 격려하고 분쟁을 해결해 주었으며,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신앙을 북돋아 주었다. 그것이 곧 서간이다.
아울러 교회가 승천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인 세상 끝까지의 복음전파를 위하여 전해받은 계시와 교회의 신앙을 기록해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점차 문헌화가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각 지역마다 다양한 체험들이 첨가되어 내용이 풍부하게 되었다.
 
2) 성경의 목록
성경은 많은 책들이 모인 신학총서인 동시에 한 권의 책이다. 성경은 많은 책들이 모여서 이루어 졌는데 구약이 46권이고 신약이 27권으로 모두 73권이 된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진다. 구약은 다시 율법서와 예언서, 성문서, 제2경전으로 나누어지며, 신약은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간, 요한의 묵시록으로 구분된다.
(1) 구약성경 - 유다인의 성경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원 후 90년 팔레스티나 북부 해안쪽에 위치한 얌니아란 곳에 모여 랍비회의를 열고 그들의 정경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게 된다. 그것이 곧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약성경이다.
율법서는 보통 모세오경이라고 하며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즉 다섯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성경의 맨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언서는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설교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총21권 이다.
목록은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상, 사무엘 하, 열왕기 상, 열왕기 하,이사야, 예레미야, 에제케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아가,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서이다.
성문서는 율법서와 예언서 이외의 책으로서 이스라엘의 역사나 시, 철학들의 내용이다.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델, 다니엘, 에즈라, 느헤미야, 역대기 상, 역대기 하권 이다.
제 2 경전은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 상, 마카베오 하, 총 일곱 권인데,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것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것 때문에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경이 총 66권이다.
(2) 신약성경 - 그리스도인의 성경
먼저 네 복음서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그리고 요한 복음서이다. 복음서의 내용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알려 준다. 따라서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성경의 정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구약의 모든 하느님의 약속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즉, 교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성경 내용이다.
그런데 복음서의 저자들은 각기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이 달랐기 때문에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여기서 마태오, 루카, 마르코 복음서는 내용과 전개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는 점이 많기 때문에 공관 복음서라 하며, 요한 복음서와 구별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생활을 했으며 복음을 선포했는지 알려 준다. 즉,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교회의 복음선포가 유다지역과 사마리아를 넘어 당시 종교관으로 지구의 끝이었던 로마에까지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간은 총 21권으로 일상생활 안에서 당면한 신앙문제에 대한 답변이나 구체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즉, 서간집은 특정공동체에 대하여 쓴 것인데 교회의 가르침과 오해를 불식하는데 그 사명이 있었다. 서간은 주로 바울로가 썼는데 그는 개인이나 혹은 단체에 편지를 자주 보내어 그들의 신앙 생활을 꾸짖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였다. 바울로 서간은 13권인데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은 바울로가 52년 초에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이다. 그 외의 서간은 8권이 있다.
끝으로 요한의 묵시록이 있다. 묵시록은 당시 박해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와 힘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즉, 세상의 많고 많은 역경과 수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나라는 완성되리라는 확신을 나타낸 내용이다.
3) 성경의 사상
성경의 사상은 한 마디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내용은 바로 루카 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살펴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 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 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에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 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군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 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 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 가 아들의 목을 끌어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루카 15,11-24).

이처럼 성경의 사상은 한 마디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느님은 언제나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 이상으로 우리들을 걱정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의 품안에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너무나 자주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 인간을 하느님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질책도 하시고 이끌어 주기도 하신다.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된 인간은 다시 지난날을 반성하고 회개와 통회의 기간을 보내면 하느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지극한 자비와 사랑으로 대해주신 것이 성경의 도처에서 나타나는 중심 사상이다.
한편 성경은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은 증명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용기와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증언과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글에서 들려오는 신앙의 음성을 받아 들이려는 신앙적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분석할 자료라기보다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자인 동시에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경건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읽고 깊이 묵상하여야 하며, 그래서 나의 삶의 태도를 변경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3. 신앙보고서인 성경
성경은 몇 년만에 혹은 몇 십 년만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천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문학 쟝르도 산문과 운문 그리고 편지 등 다양하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성경 저자들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고, 각 시대마다 문화적 특성이 달랐기 때문에 성경은 한 마디로 문학 총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총서와는 의미가 다르다. 이 성경 안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가 생생히 간직되어 있다. 물론 신앙으로 승화된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바로 온 인류를 대표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만나기도 하고 도망을 가기도 하고, 배반하여 벌을 받기도 하고, 회개하여 탄원을 드리기도 하며, 감사를 드리기도 하는 등, 한 마디로 말해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희노애락이 빠짐없이 적혀있는 신앙 보고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어떤 때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벌을 받았고, 어떤 때 하느님으로부터 축복과 상을 받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곧 우리들도 잘못하면 하느님께 벌을 받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면 축복과 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4. 신앙인이 걸어야 할 성경의 길
하느님은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 오늘날까지 당신의 뜻과 모습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보여주셨으며,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주셨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뜻을 알수 있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 바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성경은 곧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인간적인 언어로 성경의 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글자 그대로 거룩한 책이다. 성경 안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접할 때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는 기도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사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기도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접하는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해야만 한다.

 
5. 성경을 읽는 태도
1)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 기록된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하여 말해주는 그 진리의 말씀을 극진한 존경심으로 읽어야 한다.
2)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읽어야 한다.
"당신의 빛으로 빛을 보옵니다"(시편 36,10)라고 한 시편 자의 말대로 성령의 비추심이 없이는 우리가 성경의 빛을 볼 수 없고 성경을 이해할 수도 없다.
3) 사랑과 믿음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을 바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지적인 흥미나 학문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읽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로 읽어야 한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이 믿음과 사랑이다.
4) 시간을 내어서 읽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지금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일과 중 가장 소중한 시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선택해서 성경을 읽도록 해야 한다.
5) 성경을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한다.
-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 전체 흐름을 파악하며 읽어야 한다.
스스로 시간을 마련하지 않을 때 시간은 결코 나지 않을 것이다. 성경 읽는 시간은 하루 생활 중 마음과 몸이 피곤하지 않고 번거롭지 않은 때가 좋다. 외부의 방해나 분심을 떨쳐버리고 성경 읽기를 지금 곧 시작하자. 가장 큰 시간 낭비는 시작하기 위해서 허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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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0. 26. 22:00 신약성경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전해주는 책으로, 에페소서ㆍ필리피서ㆍ필레몬서와 함께 4대 '수인서간(囚人書簡)에 속하는 성서이다.

  누가 썼는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편지에는 친필 서명까지 제시하면서(4,18) 바오로가 직접 쓴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1,1-23), 실제와는 다르다. 다만 바오로의 권위를 빌어 쓴 것뿐이다. 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에 비해 문장이 훨씬 길고 복잡하며 짜임새도 엉성할 뿐 아니라, 신학적인 관심도 다르다. 바오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제자가 썼다고 보지만, 편의상 저자를 바오로라고 부른다.

  언제 쓰여졌는가?
   몇몇 학자들은 사도 바오로가 55년경에 감옥에서 썼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콜로새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진 필리피서나 로마서와 비교하면 내용이나 관점이 너무 다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오로가 순교(64 혹은 67년)한 후에 바오로의 제자가 썼다고 본다. 특히 90년대초에 쓰여진 에페소서가 콜로새를 많이 인용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대략 65-90년경에 쓰여졌다고 여겨진다.

  왜 쓰여졌는가?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도록 콜로새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우고자 이 편지를 썼다. 당시 물자와 문화의 교류가 잦았던 콜로새와 그 주변 도시에는 그릇된 신앙이 퍼져가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유대교와 그리스 철학에 뒤섞어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천사를 숭배하며, 지나친 금욕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에 저자는 그릇된 가르침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힘있게 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촉구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콜로새서는 모두 4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구원의 신비가 장엄하게 펼쳐지며,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새로운 삶이 힘있게 제시되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신비(1,1-2,3)
   여느 편지에서처럼, 바오로는 콜로새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기쁨을 전하고,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빌면서 인사하고 있다. 이어서 아름답고 뜻깊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찬가'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 자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특히 이방인들에게 나타난 구원의 신비를 찬양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상이요. 교회의 머리이며, 만물의 으뜸이요, 온갖 충만함이 머물러 있는 분으로, 당신의 피로 평화를 이룩하신 분임을 장엄하게 노래한다.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가르침들(2,4-3,4)
   콜로새로 밀려오는 그릇된 가르침들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일깨워 굳센 믿음을 지키도록 촉구한다.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가르침, 율법과 규정에 옭아매는 가르침, 육적인 허영심만을 만족시키는 금욕생활, 천사를 숭배하는 일 등은 모두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일임을 밝힌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진 사람이므로,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콜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을 이끌고 있다.

  묵은 사람, 새 사람(3,5-4,8)
   묵은 사람의 생활양식과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양식을 열거하면서 그리스도인의 덕행을 권고하고,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면서 모든 말과 행동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도록 힘주어 말한다. 특히 모든 덕행의 으뜸이자 완덕에 이르는 길로서 사랑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 또한 바로 이 사랑 위에 세워져야 함을 일깨운다. 주님의 신비를 전하는 봉사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청하면서, 끝으로 형제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posted by Bokto
2012. 10. 26. 21:00 신약성경

  감옥에서 쓴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희망과 기쁨을 전하고 있어 '기쁨의 편지'라고 불리 운다. 초대 교회 전례 때 사용한 '그리스도 찬가'가 실려 있는 아름다운 편지이다.

누가 썼는가?
   
편지에 담긴 사상이나 언어로 보아 사도 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이다. 바오로의 편지 중에서 특히 애정이 넘치는 편지이다.

   언제 쓰여졌는가?
   바오로가 먼저 팔레스티나의 가이사리아에서(사도 24,27), 다음엔 로마에서(사도 28,16-31) 감금되었다. 그 전에도 몇 차례 감옥살이를 했고(2고린 11,23) 특히 2-3년 간 머무른 에페소에서(사도 19,8-10) 많은 환난을 당했다(1고린 15,32; 2고린 1,8-10). 이들 감옥에 있을 때 이 편지를 쓴 것만은 분명한데 어느 감옥인지 확실치 않아 언제 쓰여졌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만일 로마 감옥에서 쓰여졌다면 62-63년쯤이고, 에페소 감옥에서 쓰여졌다면 56-57년쯤으로 본다.

   왜 쓰여졌는가?
   바오로는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도움을 준 필리피 교인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자 이 편지를 썼다. 바오로의 2차 전도여행(50-52) 때 설립된 필리피 교회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복음에 이바지해 왔는데(1,5) 손수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바오로도 필리피 교회에서 만큼은 기꺼이 도움을 받았다(4,15-16; 2고린 11,8-9). 바오로가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위문품을 전하려고 온 에바프로디도가 중병을 앓은 뒤 다시 필리피 교회로 돌아가는 편에, 바오로는 그동안 필리피 교인들에게 가졌던 고마움과 안부를 전하면서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굳건히 서서 생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음을 상기시키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며 일치하라고 권유한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필리피서는 짧아서 4장밖에 안된다.
   필리피 교인들에 대한 감사와 겸손, 일치와 기쁨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자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내용에 따라 네 부분으로 나눈다.

     갇힌 내 몸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전해진다면(1,1-26)
   사도 바오로는 먼저 그리운 필리피 교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전하며, 복음을 전할 때 늘 동참해 준 필리피 교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비록 몸은 갇혀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전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기쁘다면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에서 찬양받기를'(1,20) 희망하고 있음을 전한다.

      그분은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니(1,27-3,1)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비우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음을 일깨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을 하라고 한다.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같은 생각으로 같은 사랑을 나누며 겸손한 마음으로 낮추는 생활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시오(3,2-4,9)
   그리스도교를 배척하는 유대인들과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는 한편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면서 주님 안에서 일치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바오로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의로움을 지니게 되었듯이 무슨 일에서나 기도와 간구로써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의롭고 순결한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행한다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한다. 주님 안에 굳건히 서서 항상 기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4,10-23)
   필리피 교인들에게 감사하고 축복을 빌면서 편지를 끝 맺고 있다. 바오로는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그의 고난에 함께 참여해 준 필리피 교인들에게 기쁨과 감사를 전한다. 하느님께서 필리피 교인들이 아쉬워하는 모든 것을 가득 채워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함께 있기를 비는 인사로 끝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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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6. 19:30 신약성경

  교회의 기원을 명확히 제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강조하고 있어 교회 일치를 꿈꾸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지침의 책이다. 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이기에 필리피서, 콜로새서, 필레몬서와 함께 흔히 '수인(囚人)서간'이라 불리 운다.

누가 썼는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에페소서에는 사도 바오로가 쓴 것처럼 나오지만(1,1; 3,1) 실제와는 다르다. 바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 및 어휘와 문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바오로가 다른 서간에서 자주 이야기하던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이 언급되지 않고, 그리스도인과 이단 사이의 갈등만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오로가 순교한 이후에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바오로의 제자였던 사람이 바오로의 정신에 따라 바오로의 이름을 빌어 썼다고 본다. 하지만 편의상 저자를 바오로라고 한다.

  언제 쓰여졌는가?
   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들 및 콜로새서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세기말(80-100년경)에 쓰여졌다고 본다. 특히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 말기에 있었던 그리스도인 박해를 언급하지 않는 점, 이냐시오(110년경 순교)가 이미 에페소서를 알고 인용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대략 90년대초에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 쓰여졌는가?
   교회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자 이 편지를 썼다. 당시 에페소를 포함한 소아시아 일대는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세계시면 사상이라는 정책 아래 로마제국의 경계선 안에서는 이주가 자유로와 많은 물자와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개인주의와 종교혼합주의 및 비역사적인 사상이 판을 치고 있엇다. 아직도 박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는 종교의 혼합과 이단의 번성으로 더욱 심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구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정체성, 빛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 등을 상기시키며,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여 피할 수 없는 악의 세력에 맞서 이 위기를 극복하도록 촉구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에페소서는 모두 6장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구원, 교회의 뿌리와 하나됨 및 교회의 역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 등에 대한 아름답고 힘있는 비유들이 하나 가득 담겨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인 교회(1,1-3,21)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교회의 근원이요 중심임을 일깨우고 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 계획의 신비를 드러내셨는데, 이 신비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통해 계시되었음을 밝히고 또한 역사를 완성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희망을 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하느님의 작품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유대인과 이방인도 하느님 안에서 화해를 이루어 한 가족이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요 지체로서 하느님의 성전임을 힘있게 전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모든 이에게 알리다 갇힌 몸이 된 자신의 소식을 전하면서 환란 중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느님의 영광을 생각하라고 권유하면서 용기를 북돋운다.

   ◆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여 평화의 복음을(4,1-6,24)
   그리스도인은 부름받은 자녀답게 살아가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 하느님도, 주님도, 희망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교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으며 성장해 가야 하는 공동체임을 역설한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대로 그리스도인은 서로 상대방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도록 일러주며 또한 헛된 정신과 우상숭배, 빈말 등이 난무하는 악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무기(믿음과 선함, 진리와 정의, 하느님의 말씀)로 무장하여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한다. 어둠을 폭로하고, 세계의 어두운 지배자와 싸워 이기도록 힘을 북돋을 뿐 아니라 평화의 복음을 전할 태세를 갖추도록 촉구하고 있다. 

posted by Bokto
2012. 10. 26. 19:00 신약성경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대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 사이에 있었던 초대교회의 갈등과 분열상을 그대로 전해 주는 중요한 책이며, 교회가 율법주의에 빠질 때마다 믿음에 의한 구원과 성령에 의한 자유로운 삷을 되새기는데 늘 인용되어 온 성서이다. 믿음에 의한 의화를 논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면에서 로마서, 고린토전ㆍ후서와 함께 4대 서간성서로 꼽힌다.

●  누가 썼는가?
   
저자는 바오로다. 다만 당시의 편지글 관례대로 직접 마지막 인사(6,11-18)를 쓴 점으로 보아서는 대부분의 내용을 누군가에게 받아 적도록 했던 것 같다.

●  언제 쓰여졌는가?
   대략 50-55년, 특히 54년경에 썼을 것으로 본다. 제2차 전도 여행 중 병에 걸려 우연히 갈라티아에 머물면서 이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며(4,13) 교회를 세웠던 바오로가 3차 전도여행 중 갈라티아 교회의 문제를 듣고 에페소에 머물면서 편지를 띄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  왜 쓰여졌는가?
   바오로가 세운 갈라티아 교회에 들어 온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할례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면서 바오로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었다. 신도들은 이들에게 현혹되어 있었다. 이에 바오로는 자신을 참된 사도로 변호하고, '다른 복음'에 맞서 복음의 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갈라티아 지역에 퍼진 왜곡된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분열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반대자들과 이들에게 현혹된 갈라티아 교회의 신도들을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이끌고자 했다.

●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갈라티아서는 모두 6장이다. 반대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격정적인 변호와 논쟁을 통해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 및 복음의 진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켜서는 안됩니다(1,1-2,21)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복음의 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 갈라티아 교회에 완고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2,4: 거짓 형제들)이 들어 와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전하지 않는 바오로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있었다. 바오로 자신은 하느님께 직접 불리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전에 교회 내에 할례 문제가 생겨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을 상기시키고,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의 식사를 피했던 베드로를 나무라면서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의롭게 됨을 일깨운다.

   ◆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하나입니다(3,1-4,31)
   그릇된 복음에 현혹된 갈라티아 교회의 신도들을 꾸짖으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율법이 있기 이전에 의인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된 축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방민족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밝히면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이 하나이며, 하느님의 아들들임을 일깨운다. 또한 하갈과 사라의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은 이미 해방되었으므로 율법의 노예라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말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상속자로서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

   ◆ 자유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5,1-6,18)
   갈라티아인들을 현혹케 한 거짓 교사들은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영을 따라 걷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해방하셨기에 이제는 할례나 비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신앙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육을 따른 삶과 영을 따른 삶의 열매들을 제시하여 영을 따라 걷는 이들에게는 율법이 필요없음을 일깨우면서 영을 따라 형제적 사랑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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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6. 13:00 신약성경

코린토후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다. 초대 교회의 선교상황과 바오로 자신의 선교활동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를 담고 있는 중요한 책이다. 삼위일체 신앙을(13,13) 가장 명백하게 전해 주는 성서이기도 하다.

● 언제 쓰여졌는가?
   
바오로는 코린토전서와 후서 사이에 한 통의 편지('눈물의 편지'라고 부른다)를 보냈다고 밝히고 있다(2고린 2,4.9; 7,8.12). 이 편지가 코린토후서에 포함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학자들 간에 논란이 되고 있다. 두 통의 편지를 하나로 엮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먼저 쓴 '눈물의 편지'의 일부가 10-13장이라 하며, 1-9장은 나중에 보낸 '화해의 편지'라고 한다. 하지만 한 통의 편지로 코린토후서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앞서 보낸 '눈물의 편지'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다만 '화해의 편지'만이 전해지는데 이것이 코린토후서라고 주장한다(여기서는 1-9장과 10-13장이 내용과 어조에서 서로 많이 다르므로 두 통의 편지로 이루어졌다는 견해에 따른다). 대체로 이 두 통의 편지는 55-57년 사이에 쓰여졌으며, '눈물의 편지'는 에페소에서, '눈물의 편지'보다 반년쯤 뒤에 쓰여진 '화해의 편지'는 마케도니아에서 썼다고 본다.

 누가 썼는가?
   사도 바오로가 직접 썼다. 바오로가 쓴 편지들 중에 코린토후서만큼 격앙되고 흥분된 어조로 쓴 편지는 없다.

  왜 쓰여졌는가?
   바오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문제로 디도와 다른 협조자 한 사람을 코린토 교회에 파견하지만, 바오로가 세운 코린토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은 바오로를 반대하고 바오로의 사도직을 부정하면서 이 파견자들을 거부한다. 이때 코린토 교회 신자들은 이 거짓 사도들의 편에 서 있었다. 이에 바오로가 직접 코린토 교회를 방문하지만 바오로 역시 심한 비난과 모욕을 받고 에페소로 떠나온다. 슬픔에 싸인 바오로는 본의 아닌 자랑까지 섞어가며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불리움을 받아 사도직을 행해온 과정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함과 동시에 코린토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눈물의 편지'(10-13장)를 쓴다. 이 편지를 전해 준 디도의 응답을 기다리다 못해 마케도니아까지 달려간 바오로는 디도에게서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오로를 모욕한 사람들을 처벌하였으며, 바오로와 화해하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받게 된다. 이에  바오로는 화해의 기쁨을 전하면서 사도직의 참된 길과 진정한 의미를 밝히고, 형제애를 바탕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완결할 것을 권고하기 위해 '화해의 편지'(1-9장)를 띄운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코린토후서는 모두 13장이다. 사도 바오로를 거부했다가 회개하고 화해하는 등 코린토 교회의 구원과 모든 교회의 일치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열정이 흘러 넘치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은 그분의 마음에 드는 일뿐(1,1-7,16)
   코린토 교회가 자신과 화해하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먼저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동안 자신이 받은 오해에 대해 변호하면서 사도직에 대한 소신을 피력한다. 사도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팔아먹는 이들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또한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영에 의해 세워진 '새로운 계약의 봉사자'이며, 모세보다도 위대한 몫을 맡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은 두려움과 갈등 속에서 여러 환난을 당해 왔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으며 신뢰와 희망 안에서 기쁘게 살아왔다고 한다. 설령 앞서 보낸 '눈물의 편지'가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을 슬프게 했을지라도 교우들이 회개하였으니 후회하지 않는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은혜로운 선행을 완수하십시오(8,1-9,15)
   코린토 교회와 화해하는 기쁨을 전한 바오로는 이제 지난 번 디도를 통해 청했던 바와 같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운동을 완결하도록 권고한다. 심한 환난과 가난 속에서도 기꺼이 아니 능력 이상으로 이 선행에 참여한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을 모범으로 들면서, 서로 베푸는 너그러움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의로움의 수확을 늘려 주실 것이라고 함으로써 코린토 교회를 격려하고 있다.

     내가 찾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지 재물이 아닙니다(10.1-13,13)
   이 부분은 앞의 1-9장보다 먼저 쓰여져 코린토 교회에 보내진 '눈물의 편지'의 일부로 여겨지며, 시종 흥분된 분위기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바오로를 보게된다. 바오로는 누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지 똑바로 보라며 반대자들과 코린토 교회의 교우들을 꾸짖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이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세우시는 그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자신 안에는 그리스도의 진실이 있다는 확신을 전하고 있다. 자신이 겪었던 고난과 고뇌를 이야기하고, 자신이 받은 현시와 계시를 본의 아니게 자랑하면서도 자신의 약점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소위 거물급 사도들보다 모자라지 않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깨달아 코린토 교회의 교우들이 교화되어 구원받기 바란다는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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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0. 26. 12:30 신약성경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다. 코린토 교우들이 처한 문제들이 다양하게 실려있어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아는 데에 중요한 성서로 꼽히고 있으며, 우리가 잘 아는 '사랑의 송가'가 실려 있다.

 ● 누가 썼는가?
   사도 바오로가 썼다.

● 언제 쓰여졌는가?
   
사도 바오로가 3차 선교여행을 하는 중 에페소에서 머무를 때(54-57년쯤) 쓰여졌다. 바오로가 2차 선교여행 때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사도 18,11)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코린토 교회가 성도덕의 문란과 분쟁으로 심각한 혼란에 빠졌음을 전해 듣고 에페소에서 편지를 썼다.

왜 쓰여졌는가?
   코린토 교인들이 적어 보낸 문제들(1고린 7,1)에 대해 답하고 코린토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문제들을 바로 잡아주고자 쓰여졌다. 코린토 교인들 사이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는 분열과 음행은 결코 바오로가 전한 '십자가 복음'의 내용이 아님을 상기 시키면서 한 분 하느님 안에서 서로 일치하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일깨우고 있다.
   자유, 결혼, 우상숭배 등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도 함께 일러줌으로써 참된 교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애쓸 것을 사랑 안에서 호소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코린토전서는 모두 16장이다. 분쟁과 윤리적인 폐단, 결혼, 공동체 예배시 지켜야 할 자세, 부활 신앙 등 코린토 교인들이 부딪친 문제들에 대한 대답들이 바오로의 사상, 열정적인 신앙과 어우러져 담겨 있다. 코린토 전서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1,1-4,21)
   코린토 교회가 서로 편을 갈라서 싸우는 것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갈라지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같은 정신과 같은 사상으로 일치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능력에 믿음을 두어야 한다고 하면서 사도 바오로 자신이 말하는 내용 역시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배웠으며 오직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만을 선포하고 있다고 한다. 오로지 복음을 위해 목마르고 헐벗고 박해를 당하면서도 견디어내는(4,11-13) 선교사의 참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여러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5,1-6,20)
   신자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근친 상간의 음행과 교만에 대해 꾸짖고 있다. 음행을 하는 자, 우상 숭배자, 간음을 하는 자 등은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비행과 악습이라는 묵은 누룩에서 벗어나 누룩 없는 빵, 즉 순결과 진실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몸은 음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일깨우면서 음행을 피하고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라고 한다. 또한 송사가 있을 때 이교도들에게 가서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해 지적하면서 형제 사이의 시비를 이교 법정에서 해결하는 일을 옳은 일이 아니며 더욱이 형제가 형제를 고소하는 것은 큰 잘못임을 역설하고 있다.

    무엇을 하든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7,1-11,1)
   결혼은 죄가 아니니 서로 자유롭게 결혼을 택할 수 있지만 결혼을 했건 독신이건 현재상태에 충실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제 의무를 다하라고 한다. 또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문제에 있어서 세상에는 오직 한 분 하느님만 계시기에 우상은 없다고 판단하여 먹을 수 있지만, 그 행동이 믿음이 약한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라면 그 형제를 위해서 하지 말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몸으로 한 몸이 되어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11,2-14,40)
   만찬시에 드러나는 분열과 욕심을 지적하면서 성찬례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이니만큼 먼저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참여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빵을 먹거나 잔을 마시면 주님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이 각 사람에게 준 고유한 은사는 모두 공익과 교회를 키우는 데에 이바지해야 하므로 예언이나 이상한 언어를 할 때에는 예의와 질서를 지키라고 당부한다. 하느님은 무질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은사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중심은 바로 사랑의 실천임을 강조하고 있다.

    부활, 복음의 핵심(15,1-16,24)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사흘만에 일으켜지신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선포도, 믿음도 모두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바오로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모금을 지시하면서 늘 깨어 믿음 안에서 굳게 서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이루라고 당부하면서 사랑의 인사로 끝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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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0. 26. 10:58 신약성경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믿음에 의한 새로운 의'를 주장한 유명한 책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교리 형성에 크게 기여한 성서이다.

누가 썼는가?
바오로의 친필로 바오로 특유의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고, 초대교회 이후의 시대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 여러 교부들과 초대 문헌들도 바오로가 저자임을 증언하고 있다.
이는 오늘까지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16,25-27(영광송)은 후대의 편집자가 첨가했다고 본다. 로마에서는 이미 교회가 조직되어 있었고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도 살았었지만 49년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해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당해 신자들이 대부분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지를 썼다.

언제 쓰여졌는가?
바오로가 고린토에서 지낸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57-58년 겨울에 썼다고 본다.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다 전한 뒤(15,19)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15,25), 고린토에서 석달 간 체류하면서 쓴 것으로 보인다(사도 20,2의 '그리스'는 그리스의 고린토를 말한다).

왜 쓰여졌는가?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마친 바오로에게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이에 로마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바오로는 로마의 신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의 핵심을 알리고자 이 편지를 썼다.
이러한 면에서 다른 지역교회에 보낸 편지와 큰 차이가 있다. 다른 편지들은 그 지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또는 질문에 대한 응답 형식으로 쓰여졌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로마서는 모두 16장이다. 율법 중심의 유대교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교의 특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을 권고하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 죄에 죽고 생명에로(1,1-8,39)
바오로는 먼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곳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을 이방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불리운 사도로 소개한다. 그리고 주로 신앙과 율법을 대조함으로써 하느님의 의(義)에 대해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전하고 있다.
하느님의 의는 할례나 율법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믿는 이들 모두를 위한 의(義)를 말한다.
아울러 바오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실증하셨다고 한다. 아담 한 사람에 의해 죄가 세상에 들어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죽음(속량)으로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미 죄에 대해서 죽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부활하신 그분처럼 생명 안에서 거닐 게 된 사람들이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영을 따라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종국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리라고 함으로써 희망을 북돋우고 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는가(9,1-11,39)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아들이요 언약을 받은 민족으로서, 그리스도는 그들 가운데에서 나셨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 이스라엘은 의로움의 율법을 추구하였으나 그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행업에 의존함으로써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언약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직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선택된 남은 자들이 있으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보고 회개한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오로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으로 구원이 이방민족에까지 이를 수 있었음을 기억하고, 인자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자만하지 말며 엄위하신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잃지 않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새로운 생활(12,1-16,27)
그리스도에 의해 불리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죽거나 살거나 이미 주님의 것으로 어둠을 벗어 버린 빛의 자녀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오로는 새로운 삶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랑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이며, 사랑 이외에는 빚지지 말라고 강조한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의로움과 평화와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임을 일깨우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존경하며, 다정하고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웃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하는, 심지어 주리고 목마른 원수에게조차 먹여주고 물을 주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이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와 같은 사랑 실천에, 성서는 인내와 위로를 주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성령의 능력은 그 희망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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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